2019년 4월 12일

금요아침영어, '내가 커서 인종간의 불평등을 알게 되서였다' - 4/12(금)

Good morning everyone,

4월 12일 금요일, 오늘 아침 기온이 7도, 낮 최고 기온이 12도의 도쿄의 아침입니다!
영어 회화Yes, you can!



appreciate [어프 쉬에이트 - 에 엑센트] (동) (중요성, 위험, 가치등을) 충분히 인식하다. 

                                                                      (차이등을) 분간하다. (..의 진가를) 알게 되다



appreciate someone's situation   누군가의 상황을 이해하다

appreciate small differences in sounds   소리의 작은 차이를 분간하다

- Children often do not appreciate their parents until they grow up and have kids of their own.

  어린아이들은 종종 그들이 커서 자기자신의 아이를 가질때까지는 그들의 부모의 진가(가치)를 모른다.


그들(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은 요하네스버그 외곽의 웨스턴 네이티브 타운쉽
(Western Native Township)에 정착했지만, apartheid (아파르트헤이드 -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흑인) 차별정책) 정부가 강제로 그들을(사람들) 소웨토(Soweto) 에 있는
Rockville 로 이주시켰을 때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도 7명의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살던 곳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이 집이 바로 11월 4일 자정(밤) 직전에 내가 태어난 곳이었다.

내가 11월 4일에 태어난 것이 나의 부모에 대한 첫 반항적인 행동이었다 -
무슨말인가 하면, 어머님의 바램은 내가 다음날 (11월 5일), 바로 어머님의 
생일날 태어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 하루 전날 태어난 것이었다.)


They settled in the Western Native Township on the outskirts of Johannesburg
but were compelled to uproot their young family of seven children when the apartheid
government forcibly relocated them to Rockville location in Soweto.

This was the house where I was born shortly before midnight on 14 November.

It was by first act of defiance - my mother's wish had been that I make my
appearance the following day, her own birthday.


** settle; (동)...에 정착하다
** outskirt; (명) 외곽
** compel; (동)  강제로 ...시키다
    
be compelled to do..... 강제로 ....하게 되다
** uproot; (동) (지금살고 있는 곳에서) 강제로 퇴거되다
** forcibly; (부) 강제로
** defiance; [디이언스 - 에 엑센트] (명) 반항
                   an act of defiance  반항을 표시하는 행위
                   a gesture of defiance  반항의 의사표시


- Maria Phalime 이 쓴  'Postmortem' 책에서 -


'벚꽃'


지난주 일요일 도쿄 시내에서 찍은 사진



-> 위에 소개한 영어문장은 'Postmortem' 책에 있는 내용입니다. 
이 책을 알게 된 계기는 제가 자주 보는 TED talk 에서 이 책의
저자가 나와서 얘기하는 것을 보고 알게 되었고, 바로 주문해서
지지난주 토요일 아침부터 읽기 시작해서 다음날 일요일 오후까지, 
그러니까 하루 반만에 약 200페이지의 이 책을 한 번 다 읽었습니다.
그만큼 읽고 싶었던 책입니다.

요즘은 출퇴근 전철안에서 2번째 읽고 있습니다.

저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태어났고,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어릴때부터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했고,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을 거쳐서 드디어 의사가 되서 병원 
현장에서 많은 환자들을 진찰하고 치료하게 됩니다만, 그 과정에서, 
의사가 되서 아픈 사람들을 다 치료해주겠다는 그 포부는 병원의 열악한
의료시설과 의사부족으로 인한 장시간 근무,  HIV (에이즈)  양성으로 판명된 
환자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현실등을 수 년간 대하면서 많은 
고민끝에 결국은 의사직을 그만두게 됩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있어서 
어릴때부터의 유일한 꿈이었고, 정말 오랫동안 노력해서 이룬 그 꿈을 포기했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 많은 환자들을 치료해야 하는 의사의 사명을 포기했다는
죄책감등을 떨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면서, 과연 자신이 의사직을
그만둔 것이 잘 한 것인지의 답을 찾기로 하면서, 자신처럼 의사직을 그만 둔
다른 의사들을 만나서 인터뷰하면서 그 사람들은 왜 의사직을 포기했는지 
조사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신 스스로의 질문 '내가 의사직을 그만 둔 것이 
과연 잘 한 것인가' 에 대한 답을 찾게 됩니다. 이 책은 그 과정과, 본인이 보고
경험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의료현장의 실태등과, 본인이 내린 결론을 쓴
책입니다. 

즉, 의사직을 그만 둔 후에, 그 결정이 잘 한 건지를 파헤친다는 의미에서,
'Postmortem (사후시체부검)'과 같은 것이라는 것이죠.

이 책의 제목이 '
Postmortem (사후시체부검)' 인 이유인 것이죠.


나는 어릴 때 
의식주 (food, shelter, clothing) 는 항상 갖춰져 있었기에특별히 가난한다는 느낌은 없었다.

매일의 현실에서 상대적인 고난 (백인보다 흙인의 삶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을 인식하게 된 것은 바로 내가 커서 인종(백인과 흑인) 간의
불평등을 알게 되서였다.

어머님은 종종 자신을 자긍심이 있는 소작농 (개발도상국의 농민)
이라고 불렀다 - 즉,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적은 것을 최대한
활용했다. (없는대로 꾸려나갔다.)


As a child I didn't feel particularly impoverished; my basic needs
for food, shelter, clothing were always taken care of. It was only
as I grew older and became aware of racial inequalities that I 
was able to appreciate the relative hardships of our daily reality.

My mother would often refer to herself as a proud peasant;

We made the most of the little we had.



** impoverished; (형) 가난한
** racial; (형) 인종의,
** inequality; (명) 불평등
** relative; (형) 상대적인
** hardship; (명) 고난

        endure hardship  고난을 견디다

** refer to A as.....; A 를 .....라고 부르다. ....로 비유하다
** peasant; (명) 소작농 (개발도상국의 농민)
** make the most of...... ; .....를 최대한 활용하다
   



Have a nice day! ( 좋은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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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oday's English from Tokyo' 2674번째 아침 메일입니다.( since 2008/10/24 )
2. 현재 일본 도쿄에서미국-프랑스계 통신회사 재직.
3. 한국 외국어 대학교 TESOL 사이버 대학원 졸업

5영어공부, 2019 올해는두번 다시 중간에 포기하지 않겠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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